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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소식날개 돋친 소녀

<스토리텔링 워크숍, 시나리오 입문 과정> 25기 수강생 작품

붉은 물감을 일정한 모양으로 뿌린 것 같은 자국이 상처처럼 괴이하게 보인다


※ 아래의 글은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스토리텔링워크숍_ 시나리오입문과정> 21기 과정의 결과물로, 수강생의 동의 하에 게시되었으며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모든 글의 내용은 해당 저작권자에게 귀속되며,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변경하거나 도용할 수 없습니다.

 

 

날개 돋친 소녀

정민주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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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가정집 내부 학생방-이른 아침

 

이른 아침의 햇살이 커튼에 막혀 사이사이로만 들어오는 주연의 방.

 

정리가 되지 않아 어수선한 책상과 못지않게 옷이 널려있는 침대 위에 주연이 잠들어 있다. 집안에 아무도 없는 듯 정적과 냉기가 감돌던 중, 벽에 걸린 시계가 오전 7시 30분을 가리키고 그와 동시에 휴대폰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몇 초간은 반응이 없던 주연, 그러나 점점 커지는 음량에 미간이 좁아지며 폰을 찾으려는 듯 머리맡을 더듬는다. 하지만 도무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 몇 번 꿈틀대더니 결국 성질을 내며 몸을 일으킨다.

 

하주연: 으...(몸을 숙여 충전기가 꼽힌 채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워들며) 이건 또 왜 여기 있어...

 

휴대폰을 원래 두고 잔 자리에 올려둔 주연은 눈을 뜨기가 어려운지 반쯤 감은 눈으로 머리를 긁고 하품하며 시계 한 번, 침대 한 번 돌아보더니 결심한 듯 이불을 걷고 일어선다.

여전히 비몽사몽한지 불안한 발걸음으로 방밖으로 나선다. 먹다 남은 식빵이 차갑게 식은 채 소파 테이블에 방치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거실이 보인다. 늘 있는 일인 듯 대수롭지 않게 바닥의 서류를 피해 발을 디디곤 화장실 문을 연다.

 

 

S#2. 화장실 안 샤워부스

 

(E)샤워기 물소리

김이 서려 뿌연 부스 너머에 주연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비춰지는 가운데, 따뜻한 물에 기분이 좋아진 주연의 콧노래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오고, 아직 거품을 내지 않아 투명한 물만이 바닥에 흐르고 있다. 

이때 샤워 부스 바닥 클로즈업 하면 붉은 색 잉크가 한 방울이 떨어지더니 모양이 흐려지지 않고 선명하게 떠다니다가 흐르는 물에 떠밀려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S#3. 화장실 밖 거실 복도-주연의 방

 

샤워를 마치고 몸에 수건을 감은 채 나온 주연, 종종걸음으로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화장대 앞에 앉아 얼굴에 이것저것 기초화장품을 바르면서 시계를 확인한 주연, 아슬아슬한 시간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잠시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다시 화면상에 나타난 주연은 교복 셔츠 안에 받쳐 입는 민소매 티를 입은 상태이고 손에는 드라이기가 들려 있다. 다급하게 긴 머리를 이리저리 넘기면서 말리던 주연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일순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한다.

 

손을 뻗어 어깨를 더듬던 주연이 조금씩 몸을 틀어 고개를 최대한 젖혀 등을 살피려 애쓴다. 그런 주연의 등을 서서히 확대해보면 붉은 자국들이 보인다. 붉은 물감을 일정한 모양으로 뿌린 것 같은 자국이 상처처럼 괴이하게 보인다.

 

하주연: (눈을 의심하며) 뭐...뭐야? 왜 이래?

 

몇 번을 손으로 더듬어 보며 묻어나오는 것이 있는지 확인하는 주연, 갑자기 보이는 낯선 흔적에 정신을 빼앗겨 한참을 홀린 듯 거울만 들여다본다. 이때 벽에 걸린 시계가 비춰지며 초침소리가 들려오고 다시 상처를 확인하는 주연의 모습이 점점 확대된다.

(E)점점 커지는 초침소리

처음에는 느렸던 손의 움직임이 초침의 속도와 비슷해지더니 8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에 화들짝 멈춘다.

 

하주연: 어떡하지...

 

휴대폰의 ‘엄마’의 연락처 옆 통화버튼에 배회하던 손가락이 ‘아빠’ 연락처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를 반복하다가 휴대폰 화면이 암전된다.

다시 손으로 터치하자 돌아오는 휴대폰 화면, 홈 화면으로 돌아가 메모앱을 킨 뒤 ‘조퇴하고 피부과 가기’라고 적은 메모를 저장한다. 어느새 시간은 8시 20분을 향해가고 다급해진 주연은 허겁지겁 교복을 입고 가방을 챙긴 뒤 방문을 열고 나간다. 

 

 

S#4 버스 안

 

출근 및 등교시간이라 사람들이 북적이는 만원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주연, 버스가 멈춰 설 때마다 출렁이는 차체 때문에 사방으로 사람과 부딪히게 된다. 그때마다 평소와는 다르게 움츠러들게 되는 주연, 등과 어깨가 신경 쓰여 견딜 수가 없는데,

아까까지만 해도 아프지 않았던 어깨가 점점 아파오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낸다. 그런 주연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힐끗 쳐다봤다가 이내 관심을 거두고 핸드폰 화면에 집중한다.

손잡이를 잡지 않은 손으로 어깨를 잡으며 버스에 있는 노선표를 보며 몇 정거장이 남았는지를 계산한 주연이 한참 남은 정거장에 한숨을 쉰다. 다시 급출발하면서 생긴 반동으로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 한 주연, 간신히 손에 힘을 주며 어깨를 짚었던 손으로 앞쪽 의자 손잡이를 잡는다.

 

 

S#5 등굣길 학교 앞 골목

 

학교 앞 정거장에 내려 급하게 뛰기 시작한 주연, 그 옆으로 비슷하게 뛰어가는 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지각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력을 다해 달려 간신히 교문을 통과한 주연, 안도감에 달리던 다리가 점점 느려져 걷는 수준으로 바뀐다.

그때 앞서 가던 주연의 친구, 서윤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이에 화답하며 다시 빠르게 달려 서윤의 옆에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이서윤: 헐 땀 봐, 뛰어왔냐?

하주연: 버스 내리자마자, 뒤지는 줄 알았어.

이서윤: (웃으며) 그러게 좀 빨리 오지. 늦잠 잤냐?

하주연: 너나 나나 지금 간당간당 한건 똑같거든? 빨리 가자!

 

서윤의 팔뚝을 잡아 이끌며 학교 본관 건물 입구로 뛰어가는 주연, 떠들썩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때 하늘을 보면 맑고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곡선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다.

 

 

S#6 학교 교실 안

 

(E)수업 시작 종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던 학생들이 자리에 앉고 교실 앞문을 열고 문학선생님이 들어와 교탁에 책을 둔다.

 

선생님: 저번 시간에 어디까지 했었지?

 

맨 앞에 앉은 학생이 자신의 책을 손으로 가리키자 그걸 본 문학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필을 집는다. 칠판에 시 전문을 적기 시작하는데 칠판을 보면 다음의 시가 적혀있다.

 

(감자 -김효원)

 

땅속 

어둠에서 자란 감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을

제 몸에 키우며 커간다.

 

흙으로 덮인

얇은 껍질 속의

빛 한 덩이

 

어둠에 

뽀얀 속살

거뭇거뭇 썩고

 

싹을 

하늘로 하늘로

밀어 올리는

푸른 명의 힘

 

문학선생님: 오늘 배울 시는 일상적인 소재인 감자를 독특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이를 형상화한 현대시 작품입니다. 특히 감자가 싹을 틔우는 과정을 목표를 이뤄내는 인고의 시간에 빗대어 주제의식을 드러낸 점이 인상적인데요. 시가 짧으니까, 전문 낭독하겠습니다. 

 

1연부터 시를 낭독하는 문학선생님, 화면이 전환되며 책상에 앉은 학생들의 모습을 비춘다.

 

아무 생각 없이 이를 듣고 있는 주연, 저도 모르게 칠판에 적힌 작품 구절

‘땅속 어둠에서 자란 감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을 제 몸에 키우며 커간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선생님으로부터 눈총을 받는다. 그럼에도 주연의 머릿속에는 아까 선생님이 읽은 작품의 구절이 머리에 맴돌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그제야 파드득 놀란다. 이때 서윤이 주연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치는데,

 

이서윤: 주연아! 왜 그래?

하주연: 응? 아, 그게...

 

애써 아까의 음성을 떨쳐 보내려는 듯 주연은 고개를 젓는다.

 

하주연: 아무 것도 아니야, 나 보건실 좀 다녀올게.

이서윤: 왜, 어디 아파? 괜찮은 거야?

하주연: 괜찮아. 약 먹으면 가라앉겠지.

 

같이 가주겠다는 서윤을 만류하고 문밖을 나서는 주연, 서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S#7. 보건실

 

보건실이라는 표지판을 비춰지고 주연의 손이 문을 드르륵 연다. 하얀 가운을 입은 보건선생님이 앉아 있다가 주연을 보고 손에 든 서류철을 덮어 책장에 꽂는다.

 

주연은 보건실 입구 옆 테이블에 있는 보건카드를 꺼내 적기 시작한다. 학년, 반, 이름 부분을 적은 뒤 왜 왔는지에 대해 써야하는 데, 뭐라 설명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두드러기라고 적는다. 대강 내용을 채운 주연이 이를 들고 보건선생님 앞에 앉는다. 주연이 쓴 보건카드를 읽어보는 보건선생님, 눈이 심각해진다.

 

보건선생님: 등에 두드러기가 났다고? 언제부터 그랬니?

하주연: 오늘 아침에 처음 봤어요.

보건선생님: 혹시 열이 나거나 속이 메슥거리진 않고?

하주연: 그렇진 않은데 가끔 등이 따갑고 뜨거운 거 같아요...

보건선생님: (체온을 재고 정상인 수치인 것을 확인하고는) 일단 저쪽 침대에 앉아볼래?

 

주연이 일어나 커튼을 걷고 침대에 걸터앉아 블라우스 단추를 푼다. 민소매 티를 조심조심 걷어 올리는 보건선생님, 주연의 등을 보고 의문에 찬 눈으로 이리저리 살피는데, 주연의 등을 보면 아무 것도 없이 깨끗한 상태.

 

보건선생님: 등에 두드러기가 난 게 맞니? 다른 곳이 아니고?

하주연: 네, 등이랑 어깨부분에요.

보건선생님: (약간 언짢은 듯) 등에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하주연: 네? 그럴 리가요?

 

벽에 걸린 거울로 향하는 주연, 몸을 틀어 등을 보는데, 그녀의 눈에는 틀림없이 붉은 자국이 보인다. 심지어 아침에 봤던 것보다 더 심한 모습인데, 그런 주연을 꾀병부리기 위해 온 학생이라는 생각이 든 건지 혀 한번 차고는 일어서는 보건선생님.

 

하주연: (살짝 격양된 어조로) 분명 여기 두드러기 났는데요. (잘 닿지 않는 손을 뻗어 가리키며) 여기, 안 보이세요?

보건선생님: 글쎄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뭐 그런 거니?

하주연: 그런 거 아니에요! 분명, 여기에...

보건선생님: (주연이 쓴 보건카드를 살펴보며) 2학년 4반? 담임선생님이 김서형 쌤 맞지? 보건실 이런 식으로 남용하면 진짜 아픈 학생 왔을 때 처치 늦어질 수도 있어. 한 번은 봐 줄 테니까 그냥 가. 쉬는 시간 끝나간다.

 

이젠 주연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컴퓨터에 집중하기 시작한 보건선생님, 주연은 당황스럽고 억울한 마음에 입만 달싹이다가 거울에 분명히 보이는 자국을 손으로 더듬어 본다.

 

보건선생님: (이젠 짜증난다는 억양으로) 안 가니?

 

한층 높아진 음성에 놀란 주연, 결국 다시 블라우스를 입고 보건실을 나선다.

(E)수업 시작종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에 뛰기 시작하는 주연, 달리는 반동으로 흔들리는 팔 때문에 어깨가 더 아픈지 인상을 쓰는데..

 

 

S#8. 교실

(E) 쉬는 시간 종

 

다음 시간이 체육 과목임을 나타내는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학생들의 모습. 주연 역시 체육복차림으로 체육복 상의에 팔을 넣고 있는 서윤 앞자리에 걸터앉는다.

 

하주연: 서윤아 내 등 좀 봐주라.

이서윤: 니 등? 등을 왜?

하주연: 사실 등에 두드러기 나서 보건실 갔는데 두드러기가 안 보인대.

이서윤: 갔다 와서 그냥 수업 듣길래 괜찮은 줄 알았네. 어디 봐봐.

 

체육복 상의를 걷어 올리는 주연, 서윤이 주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를 돕는다. 주연의 등을 서윤이 유심히 보는데, 아까와 마찬가지로 깨끗한 주연의 등이 보이고, 서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주연의 등을 내리친다.

 

하주연: 아! 왜 때려!

이서윤: 아무 것도 없구만, 무슨! 얼른 가자. 쉬는 시간 얼마 안 남았어.

하주연: 진짜? 정말 없어?

 

교실 뒤편에 있는 거울 앞으로 달려간 주연이 등을 살펴본다. 아까 보였던 것보다 붉은 자국이 더 심해져있다. 아까는 어깨에서 등 중반까지라면 지금은 허리까지 번져있는 상태. 이를 본 주연이 경악하고,

 

이서윤: (그런 주연을 조금은 무서운 듯 쳐다보며) 너 왜 그래?

 

말없이 거울만 쳐다보고 있던 주연, 힘없이 고개를 젓고는 문을 열고 나간다. 의아한 표정으로 따라 나가는 서윤.

 

 

S#9 학교 운동장 농구코트-한 낮

 

학생들이 농구코트에 모여 2열 횡대로 서서 준비운동을 하는 모습이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차례대로 보인다.

이어서 화면이 전환되며 정면에 농구골대가 보이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한명씩 농구공으로 드리블해서 골대에 슛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주연의 차례가 오고, 영 동작이 삐걱대며 부자연스러운 주연, 결국 평소보다 느리고 부정확한 자세로 드리블하며 공을 던지는데, 농구공이 골대 링에 부딪혀 튕겨나간다.

 

저 끝으로 굴러간 농구공을 줍기 위해 걷던 주연은 순간 몸을 웅크리며 주저앉는데, 등이 갈리지는 듯한 통증을 느껴 이를 악물고 끙끙댄다.

손으로 등을 더듬어보는 주연, 아까와는 다르게 등이 판판하지 않고 이물감을 느낀다. 이때 주연의 등을 비춰보면 청록색 체육복 상의 속에 젓가락 길이의 길쭉한 막대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불룩하다. 차마 거울을 볼 엄두도 나지 않아 그대로 농구공을 들고 학생들이 앉아있는 스탠드로 온 주연, 서윤이 부르는 소리에도 무릎을 모으고 머리를 그 사이에 파묻는다.

 

무릎 사이로 보이는 눈 질끈 감은 주연의 얼굴, 손으로 눈을 덮었다가 머리를 감싸 쥐다가 하며 분주하다.  

 

하주연: 아무 것도 아니다...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주연이 앉은 스탠드 한 칸 아래에서 걱정스럽게 그녀를 올려다보는 서윤, 차마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에 망설이다가 결국 주연과 떨어져 앉는다. 여전히 주연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E) 쉬는 시간 종

 

주연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가 종이 울리자마자 뛰어서 계단을 오른다. 복도를 뛰어가 도착한 보건실 앞에서 숨을 고른 주연이 빠르게 문을 연다. 안에 있던 보건 선생님, 무료하게 턱을 괴고 있다가 놀라 쳐다보는데, 아까 왔던 주연을 알아보고 살짝 인상을 쓴다.

 

보건선생님: 너 아까,

하주연: (말을 겹치며) 저 진짜 등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 (살짝 울먹이며) 제발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곧 울 것 같은 주연의 모습에 놀라 화를 내려던 것도 잊은 보건선생님, 결국 앉으라고 손짓한다.

 

옷을 걷어 올리는 보건선생님의 손길에 몸을 움츠리며 바들바들 떠는 주연, 그런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등을 계속 살피는데 역시나 깨끗한 등. 아까처럼 화를 내기에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뜸을 들인다.

 

보건선생님: 음... 혹시 어제 잠 제대로 못 잤니?

하주연: 아니요! 엄청 잘 잤어요. 평소랑 다른 점도 없었구요...정말 아무 이상 없나요?

보건선생님: 일단 좀 누워있자, 담임쌤한테는 내가 말해놓을게.

 

말을 돌리는 선생님의 모습에 역시나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임을 깨달은 주연, 대답 없이 일어나 보건실을 나가버리고. 황망하게 남겨진 보건선생님은 기가 막힌지 헛웃음 한 번 짓고 다시 턱을 괸다.

 

 

S#10. 교무실 안

 

‘김서형’이라고 적힌 이름표가 놓인 책상이 보이고 그 위로 담임선생님의 옆모습이 보인다. 무언가에 열중하던 그녀의 어깨에 주연의 손이 닿는다. 그 손짓에 고개를 돌리면 이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주연의 모습. 담임선생님은 깜짝 놀라 몸까지 주연 쪽으로 돌린다.

 

담임선생님: (놀라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주연: 선생님...

담임선생님: 어머 땀 좀 봐, 어디 아파?

하주연: 저...조퇴 좀...

담임선생님: 많이 아프니? 그래, 일단 이거 작성해야하거든? 잠시만...

 

담임선생님이 책상 위 선반을 뒤적이다가 파일철을 하나 꺼내들고 주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까까지는 있었던 주연이 사라지고 없다. 놀란 담임선생님이 벌떡 일어나 교무실 밖으로 나가보면 아무도 없이 휑한 복도. 양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주연의 모습을 찾다가 계단을 오른다.

 

 

S#11. 교실 안

 

쉬는 시간이라서 자유분방한 아이들이 앞문 열리는 소리에 잠시 조용해진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담임선생님이다. 성큼성큼 교실 안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주연을 찾아보는데 주연의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담임선생님: 얘들아, 주연이 못 봤어?

 

다들 고개를 갸웃하다가 늘 같이 다니는 서윤에게 눈길이 모이는데, 서윤도 자리에 없는 상태다. 그때 뒷문이 열리고 서윤이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데,

 

담임선생님: 서윤아 주연이는?

이서윤: (혼란스러운 눈으로) 주연이 갑자기 가방 들고 뛰쳐나갔어요. 쫓아가는데 너무 빨라서...

 

서윤 과거 회상- 허겁지겁 가방을 챙기는 주연 모습, 어디 가냐는 물음에도 말없이 가방을 들고 나가버리고 이를 뒤쫓아 가는 서윤의 모습.

 

담임선생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못 쫓아갈 만큼 빨랐다고?

이서윤: 네...

 

모두들 갑작스러운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S#12. 대교 위 인도-늦은 오후

 

살짝 어두워지기 시작한 시간 강 위의 차도를 옆에 낀 인도. 옆으로는 여러 대의 차가 빠르게 지나가고 그 여파로 강한 바람이 분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문 인도에 주연이 혼자 걷고 있다. 등에 매지 못한 가방을 앞으로 매고 고개를 숙인 채 걷는 주연, 여전히 체육복 차림이다. 이때 주연의 등을 보면 아까보다 더욱 부풀어있다. 왠지 날개를 연상시키는 모양새, 이를 증명하듯 상의 밑으로 살짝 튀어나온 빳빳한 깃털 두어 점이 보인다.

 

휴대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데 여러 번 통화 연결음이 나다가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다. 통화를 종료한 뒤 이번엔 아빠에게 전화를 거는데 역시 받지 않는다. 눈물이 말라붙어 엉망인 얼굴을 문지른 주연이 잠자코 바닥을 보며 걷는다. 이때 주연의 뒷모습을 보여주는데 서서히 깃털이 좀 더 튀어나오기 시작하고 개중 몇 개는 바닥에 떨어진다. 떨어진 깃털이 바람에 날려 허공을 배회하다가 천천히 강을 향해 가라앉는다.

 

 

S#13. 여러 피부과 및 병원 내부

 

주연이 여러 병원에 들러서 자신의 등을 보여주는데 모두 아무 것도 안 보인다며 고개를 젓는다. 어느새 영업시간이 끝난 병원 멍하니 앞에 선 주연은 결국 밖으로 나와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 그렇게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고...(E)점점 거칠어지는 주연의 숨소리  

 

 

S#14. 주연의 아파트 앞 - 저녁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져 가로등이 곳곳에 쳐져있는 아파트 단지 안, 가로수가 몇 개 심어져있고 그 아래에는 주민들이 쉴 수 있는 벤치가 몇 개 설치되어 있다. 하교시간을 이미 넘긴지 오래고 저녁시간이라 사람이 드물다. 얼핏 지나다니는 사람도 모두 휴대폰 만 바라보며 길을 걷는다.

아파트 후문 안으로 들어오던 주연이 불 꺼진 자신의 집을 한 번 올려다보고 다시 고개를  떨군다. 이때 옷이 팽팽해질 정도로 날개가 불룩하게 옷 아래에 숨겨져 있다. 기운 없이 벤치에 앉는 주연, 온전히 등을 기대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어쩔 줄 모르다가 옆으로 눕는다. 집에 들어갈 기운도 없는지 손가락 하나 꿈쩍 않고,

 

주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 눈의 깜박임이 서서히 느려지다가 스륵 감긴다. (F.O)

 

 

눈의 깜박임에 맞춰 화면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짐을 반복하다가 완전히 밝아진다. (F.I)

 

주연의 1인칭 시점으로 바뀐 화면, 푸른 하늘만이 보이다가 천천히 아래로 숙이면 까마득해 보이는 풍경, 마치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풍경과도 같은데,

(E) 바람소리

이때 보이는 운동화 신은 다리, 주연의 것이다. 허우적거리는 움직임과 어쩔 줄 몰라 하는 어...어어...하는 소리 비명을 지르기에는 현실감이 없는지 계속 당황하다가 점차 소리가 커진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어린 아이처럼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는데 여전히 고도는 낮춰지지 않고 상승한다.

 

마구잡이로 화면이 흔들리고 얼핏 깃털의 끝자락이 화면에 스쳐지나간다.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 주연, 화면의 흔들림이 더욱 격해지다가 외마디 비명과 공명음이 들리며 암전.

 

 

S#15. 다시 아파트 단지 안

 

눈을 번쩍 뜬 주연, 자신이 여전히 벤치에 누워있음을 확인하고 바닥에 발을 디디며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지 못하다가 고개를 드니 자신의 집에 불이 들어와있는 걸 확인하고 벌떡 일어나 달려간다.

 

 

S#16. 주연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주연이 문을 연다. 센서등에 의지해서 집으로 들어가 보면 거실 테이블 앞에 엄마가 노트북을 켜놓고 잠들어 있다. 노트북의 하얀 빛이 점멸하면서 집안이 암흑으로 변한다. 어둠 속에서 실루엣만 간신히 보이는 주연이 가만히 있다가 움직여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S#17. 주연의 방- 밤

 

불을 켜고 가방을 내동댕이치다시피 내려둔 주연이 힘없이 침대에 엎드린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등이 여전히 불룩하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줄어들어 있다. (T.B)

 

 

S#18. 주연의 방- 아침

 

다시 아침, 엎드려 있었던 주연이 똑바로 누운 상태다. 휴대폰 알람이 울리자마자 주연의 눈이 바로 반짝 떠진다. 튕겨 오르듯 일어난 주연이 화장실로 우다다 달려가 체육복 상의를 거침없이 벗고 심호흡하며 뒤를 돌아본다.

 

입이 벌어지는 주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거울 너머의 주연의 깨끗한 등이 보인다.

 

하주연: 으아아...

 

다시 주연의 깨끗한 등이 보이는데 미세하게 붉은 점 하나가 찍혀있다. 그러나 주연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듯 안도의 한숨처럼 지른 비명과 함께 화장실 문이 닫히고 화면이 암전된다.

 

-END-


 




글 정민주 (tjzero2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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