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책 창작 기초 워크숍>
최은영 그림책 작가 / 편집자 인터뷰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림책 창작과 편집도 끝없는 배움의 연속 같아요.
매번 도전해야 할 과제가 생기고, 잘 몰랐던 것을 깨닫게 돼요.

Q.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계신 일을 포함하여)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영입니다. 저는 그림책 글을 쓰는 작가이고, 2005년부터 지금까지 그림책 기획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지난 2022년에 『그림책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라는 그림책 창작 입문서를 출간했는데, 작가이자 편집자로서의 저의 경험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림책을 사랑해 주시는 독자분들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최근에는 그림책을 창작하고 싶어 하는 새내기 작가들을 위한 수업도 여러 기관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이번 [그림책 창작 기초 워크숍]을 통해 선생님을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원래는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셨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책들을 만드셨었는지 궁금합니다.
내년이면 20년째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니, 그간 만든 책은 수없이 많아요. 하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 책들은 아무래도 막 그림책 편집 일을 시작하며 만든 책들이에요. 저는 2003년부터 편집자로 일했어요, 어린이 책을 만들다가 2005년에 창비에 입사하면서 그림책 편집 일을 처음 배우게 됐어요. 당시 창비에서는 『넉 점 반』 『시리동동 거미동동』 등으로 유명한 ‘우리 시 그림책’ 시리즈가 한창 출간되고 있었는데요, 그 시리즈를 기획하고 편집, 디자인까지 맡아 진행했던 달리 크리에이티브와 함께 편집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저는 경험이 없는 꼬마 편집자였기 때문에 사실 제가 한 것은 거의 없어요. 달리 크리에이티브의 유능한 선배님들과 작가님들의 작업 과정을 보고 듣고 배우면서 그림책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깨닫고 배우는 과정이었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점자 그림책 시리즈인 ‘책 읽는 손가락’을 론칭하기도 했어요. 시각장애예술인협회 '우리들의 눈'과 협력하여 만든 그림책인데, 점자와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어요. 시각장애인과 정안인 모두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자 예술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한 끝에 탄생한 책들이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Q. 창비에서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만드셨던 『마음의 집』 이 국내 창작 그림책 최초로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책을 만드셨을 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마음의 집』을 얘기하자면 그림책 기획자이자 연구자이신 이지원 선생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또 ‘책 읽는 손가락’ 시리즈와도 연결되어 있죠! 이지원 선생님과 『마음의 집』의 글 작가 김희경 선생님이 모두 시각장애예술인협회 '우리들의 눈'의 회원이었거든요. 모두 함께 ‘책 읽는 손가락’을 만들던 중, 이지원 선생님을 통해 김희경 선생님의 원고 「마음의 집」을 읽게 됐어요. 한눈에 이미지가 그려지는 좋은 그림책 원고였죠. 다만 첫 원고에는 집뿐 아니라 정원, 씨앗 등 더 다양한 이미지 요소와 장소들이 등장했어요. 과감하게 ‘집’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집중해 수정해 보자는 의견을 드렸는데 김희경 선생님께서 적극 수용해주셔서 글 원고가 먼저 완성이 되었고요. 이후 이지원 선생님께서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선생님과 만나 이 원고를 보여드렸고, 그렇게 두 작가의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이지원 선생님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죠! 저는 글과 그림이 조화롭게 구성되는 데 중점을 두고 편집 작업을 진행했고요, 당시 창비에서 함께 그림책을 만들고 있었던 김성미 디자이너님과 함께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선생님의 그림이 책이라는 물성 안에서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체 페이지를 몽땅 재인쇄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또 당시에는 지금처럼 그림책의 독자층이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는 “어린이가 읽기에 너무 어렵다” “지나치게 철학적이다”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런 목소리와 싸워 나가며 출간을 밀어붙였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어요.
Q. 그렇게 편집자로 일해오시다가, 어떤 계기로 그림책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신 건가요?
생각해보면 저는 여러모로 운이 좋은 편집자였어요. 유능한 선배님들의 편집, 디자인 작업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또 제가 만든 책으로 맺은 인연을 통해 또 다른 좋은 작품과 작가를 만나게 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림책 작가가 된 것도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계속 만들다 보니 저도 모르게 쓰게 된 것이죠. 내 안에서 쓰고 싶은 이야기의 씨앗들이 저도 모르게 자라고 있었고, 그걸 글로 적어봤더니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그림책 원고의 형식이었어요. 오랜 시간 그림책을 읽고 만들어 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체화된 것 같아요. 하지만 원고를 썼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다른 작가들과 똑같이, 완성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반려당하고, 수정하고, 또 투고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어느 새 그림책으로만 일곱 권을 출간했는데요. 한 권, 한 권 계약하고 출간하는 과정은 늘 어려운 것 같아요.
Q. 저는 선생님을 뵙기 전, 『안젤로와 곤돌라의 기나긴 여행』을 스튜디오 마르잔 김성미 대표님 소개로 알게 되어 읽어 보았습니다. 제가 읽은 모든 환경 그림책 중에 가장 시적인 그림책이었습니다. 어디서 영감을 얻으셨었는지, 작업 과정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집 고양이들은 늘 저를 새벽 5시쯤 깨워서 밥을 달라고 하는데요, 이 원고를 쓰게 된 날도 그랬어요. 새벽에 잠이 깨서,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들고 멍하니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냉장고 쪽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려왔어요. 고양이 녀석 중 하나가 제 관심을 끌려고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리였죠. 그런데 그 순간, 달그락 소리가 마치 물건이 제게 말을 거는 것처럼 들렸어요. “나 여기 있어. 너는 나를 잊었겠지만. 네가 죽더라도 나는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거야.” 컴퓨터를 켜고 그 목소리가 들리는 대로 원고를 적기 시작했어요. 냉장고 자석과 머그컵의 대화로 이루어진 긴 이야기였죠. 그렇게 『안젤로와 곤돌라의 기나긴 여행』의 초고가 완성되었어요.
환경이나 쓰레기 문제는 제가 늘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자 책에 담고 싶은 메시지들 중 하나였어요. 단지 적당한 글감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죠. 그런데 머그컵과 냉장고 자석의 대화를 쓰다 보니 자연스레 쓰레기 문제와 만나게 되었어요. 오래된 여행 기념품, 한때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잊히고, 버려져서, 쓰레기가 되어 버린 물건의 입장에서 쓰레기 문제를 이야기하는 거죠. 이 이야기를 쓰면서 무척 슬펐고, 어떤 장면은 울면서 쓰기도 했어요. 그래서 슬펐다는 소감들을 들려주시는 독자님들을 만날 때마다 기쁘답니다.

Q. 편집자이실 때의 모드와 작가로서의 모드가 매우 다를 것 같은데요, (마인드셋이나 작업 환경 등) 편집자로서 일하셨던 것이 어떤 부분에서는 도움이 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작가님으로서의 선생님을 괴롭히기도 할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편집자는 참 바빠요. 보통 열 권 정도는 늘 동시에 진행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최대한 시간을 쪼개 쓰면서 효율적으로, 정리해가며 일을 해야만 소홀함 없이 맡은 책들을 잘 진행시킬 수 있어요. 그런데 작가의 일이란 효율과는 거리가 멀더라고요. 마감 날짜는 다가오는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쓰거나, 쓴 문장을 다 지워버리는 날도 많으니까요. 또 원고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원고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이미 완성한 다른 원고의 문장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도 자주 일어나요. 이런 비효율과 무질서가 저에게는 일종의 죄책감을 안겨 주곤 했어요. 너무 무능한 인간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불과 작년에야 깨달았어요. 그렇게 비효율과 무질서를 견디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일이라는 것을요.
Q. 선생님이 쓰신 책 중에 가장 작업하시기 힘들었던 책은 무엇인가요? 이유도 궁금합니다.
『불어, 오다』가 가장 어려운 원고였어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다른 대상을 통해 이미지화하는 작업이었거든요. 게다가 그림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문장과 구성이어야 했고요. 원고가 완성된 뒤 이경국 선생님께서 스케치 작업까지 마치셨는데, 그제야 제 원고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바람’이 글 원고에서 제대로 이미지화되지 않은 상태였던 거예요. 그래서 출판사와 이경국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일 년 정도를 고민한 끝에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다시 썼어요. 그 과정이 무척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글과 그림의 완성도를 더 높여서 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또 그림책 작가로서도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수정 과정과 깨달음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림책 창작 기초 워크숍]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Q. 선생님의 작업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취미, 작업 혹은 일상 루틴 등등)은 무엇이 있을까요?
음악이 굉장한 도움이 돼요.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연주하거나 만들어 보면서 얻어지는 영감들이 있거든요. 올해는 기회가 없었지만, 작년까지는 뮤지컬 대본이나 작사 작업도 함께 해왔는데요. 음악 안에서 쓰이는 텍스트를 쓰는 일과 그림책의 텍스트를 쓰는 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지점도 있어요. 소리내어 읽는다(노래부른다)는 것과 짧고 단순한 구성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넣어야 한다는 점, 또 그림 작가(작곡가)와 독자(청취자)에게 시각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점은 매우 비슷하죠. 두 작업을 병행하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어요. 요즘도 영감이 필요할 때면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필사하거나 멜로디를 떠올리며 글을 쓰곤 해요.
Q. 그림책 외에 최근에 빠져있는 것이 있으신가요? 음식이랄지, 음악이랄지 그런 것이요.
저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꾸준히, 평생을 하는 편이에요. 음악에 관련된 취미(노래나 피아노 연주), 바느질이나 뜨개 등이 평생의 취미인데요. 요즘은 뜨개로 옷 만드는 재미에 빠져 있어요. 작은 조각들을 이어 입체적인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심지어 그것을 제가 입을 수 있다니! 너무 신기하답니다. 또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피아노를 연습해요.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은 없지만 제가 연주하는 곡과 제 손가락에 집중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세상에 음악과 저만 남은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어요!
Q. [그림책 창작 기초 워크숍]이 8월 첫 개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수업에서는 어떤 내용들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실 예정이신가요?
창작하고자 하는 이야기 혹은 글감과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대한 탐구가 주가 될 거예요. 자신이 창작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잘 맞는지 점검하게 될 거고, 잘 맞다면 그림책의 물성을 가장 잘 활용해서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향을 함께 찾아볼 겁니다. 또 하나의 글감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글감들을 함께 탐색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탐구하면서 이야기의 씨앗, 즉 앞으로 만들어갈 그림책 기획거리들을 여러 개 쌓아나가도록 유도할 거예요.
더불어 세 분의 선생님을 모시고 특강을 진행할 텐데요. 저와 오래 호흡을 맞춰온 디자이너이자 상상마당의 [볼로냐 그림책 워크숍]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시는 스튜디오 마르잔 김성미 실장님께서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그림책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실 예정이에요. 이장미, 홍선주 선생님께서는 그림책 작가가 일상에서 영감을 얻고 어떻게 흥미로운 장면으로 연출하는지, 실제 작업물들을 예로 들며 안내하실 예정입니다.
Q. 어떤 분들이 [그림책 창작 기초 워크숍] 수업을 들으면 좋을까요?
그림책은 글 원고와 그림 원고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림책 작가이지만 두 원고 중 어느 한쪽에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밸런스를 맞추는 데 이 수업이 분명 도움될 거예요. 또 동화를 써본 적은 있지만 그림책의 글은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글 작가들에게도 이 수업이 그림책 글을 쓰는 방법을 익히는 시간이 되리라 믿어요. 물론 그림책 창작에 처음 도전하는 미래의 그림책 작가님들도 환영합니다. ‘창작의 기초’를 다지는 수업이니까요!

Q. 그림책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꼭 이것 하나 만큼은 이야기 하고 싶다 하시는 것이 있을까요? (준비라든지, 역량이나 마인드라든지 경고(?)라든지 뭐든지요!)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하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림책 한 권이 출간되는 데 보통 1~2년의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기획 단계부터 고려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요. 저도 원고를 쓰고 계약을 맺고 책으로 출간하기까지 늘 2~3년의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게다가 그림책은 수명이 길잖아요. 내가 창작한 책이 지금 세대의 어린이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미래의 어린이들도 함께 읽는다고 인식한다면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죠. 그러니 빨리 그림책을 출간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조급함을 살짝 내려놓으시면 좋겠어요. 그래야만 그림책 작업의 지난한 과정이 조금은 더 수월하고 재미있게 느껴지실 거예요!
Q. 선생님의 다음 그림책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주제나 내용에 대한 힌트를 주실 수 있을까요?
『내 어깨 위의 두 친구』의 작가 이수연 선생님과 함께 ‘물’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만들고 있어요. 이수연 선생님의 아름다운 수채화에 제 글이 어우러질 생각을 하니 아찔하게 기쁩니다. 환경과 자연에 대한 그림책도 계속 창작하고 있어요. 『살아갑니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이장미 선생님과 함께 곤충을 통해 빛과 어둠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을 준비 중이에요. 두 권 모두 올해 출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마지막으로 그림책 작가 혹은 편집자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한 말씀 주신다면요?!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림책 창작과 편집도 끝없는 배움의 연속 같아요. 쉽게 완성되는 책은 없거든요. 매번 도전해야 할 과제가 생기고, 잘 몰랐던 것을 깨닫게 돼요. 그런데 작가에게는 편집자가, 편집자에게는 작가가 있잖아요. 작가에게 편집자란 어둠속에서 등불을 들고 길을 안내해주는 등등한 동반자와 같아요. 또 작가는 편집자에게 새로운 영감과 기획거리를 안겨주는 뮤즈와 같죠. 그림책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편집자, 혹은 작가와 함께 책을 완성해가는 즐거움을 꼭 한번 느껴보시면 좋겠어요!
*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은영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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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창작 기초 워크숍>
최은영 그림책 작가 / 편집자 인터뷰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림책 창작과 편집도 끝없는 배움의 연속 같아요.
매번 도전해야 할 과제가 생기고, 잘 몰랐던 것을 깨닫게 돼요.
Q.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계신 일을 포함하여)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영입니다. 저는 그림책 글을 쓰는 작가이고, 2005년부터 지금까지 그림책 기획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지난 2022년에 『그림책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라는 그림책 창작 입문서를 출간했는데, 작가이자 편집자로서의 저의 경험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림책을 사랑해 주시는 독자분들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최근에는 그림책을 창작하고 싶어 하는 새내기 작가들을 위한 수업도 여러 기관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이번 [그림책 창작 기초 워크숍]을 통해 선생님을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원래는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셨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책들을 만드셨었는지 궁금합니다.
내년이면 20년째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니, 그간 만든 책은 수없이 많아요. 하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 책들은 아무래도 막 그림책 편집 일을 시작하며 만든 책들이에요. 저는 2003년부터 편집자로 일했어요, 어린이 책을 만들다가 2005년에 창비에 입사하면서 그림책 편집 일을 처음 배우게 됐어요. 당시 창비에서는 『넉 점 반』 『시리동동 거미동동』 등으로 유명한 ‘우리 시 그림책’ 시리즈가 한창 출간되고 있었는데요, 그 시리즈를 기획하고 편집, 디자인까지 맡아 진행했던 달리 크리에이티브와 함께 편집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저는 경험이 없는 꼬마 편집자였기 때문에 사실 제가 한 것은 거의 없어요. 달리 크리에이티브의 유능한 선배님들과 작가님들의 작업 과정을 보고 듣고 배우면서 그림책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깨닫고 배우는 과정이었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점자 그림책 시리즈인 ‘책 읽는 손가락’을 론칭하기도 했어요. 시각장애예술인협회 '우리들의 눈'과 협력하여 만든 그림책인데, 점자와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어요. 시각장애인과 정안인 모두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자 예술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한 끝에 탄생한 책들이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Q. 창비에서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만드셨던 『마음의 집』 이 국내 창작 그림책 최초로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책을 만드셨을 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마음의 집』을 얘기하자면 그림책 기획자이자 연구자이신 이지원 선생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또 ‘책 읽는 손가락’ 시리즈와도 연결되어 있죠! 이지원 선생님과 『마음의 집』의 글 작가 김희경 선생님이 모두 시각장애예술인협회 '우리들의 눈'의 회원이었거든요. 모두 함께 ‘책 읽는 손가락’을 만들던 중, 이지원 선생님을 통해 김희경 선생님의 원고 「마음의 집」을 읽게 됐어요. 한눈에 이미지가 그려지는 좋은 그림책 원고였죠. 다만 첫 원고에는 집뿐 아니라 정원, 씨앗 등 더 다양한 이미지 요소와 장소들이 등장했어요. 과감하게 ‘집’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집중해 수정해 보자는 의견을 드렸는데 김희경 선생님께서 적극 수용해주셔서 글 원고가 먼저 완성이 되었고요. 이후 이지원 선생님께서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선생님과 만나 이 원고를 보여드렸고, 그렇게 두 작가의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이지원 선생님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죠! 저는 글과 그림이 조화롭게 구성되는 데 중점을 두고 편집 작업을 진행했고요, 당시 창비에서 함께 그림책을 만들고 있었던 김성미 디자이너님과 함께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선생님의 그림이 책이라는 물성 안에서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체 페이지를 몽땅 재인쇄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또 당시에는 지금처럼 그림책의 독자층이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는 “어린이가 읽기에 너무 어렵다” “지나치게 철학적이다”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런 목소리와 싸워 나가며 출간을 밀어붙였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어요.
Q. 그렇게 편집자로 일해오시다가, 어떤 계기로 그림책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신 건가요?
생각해보면 저는 여러모로 운이 좋은 편집자였어요. 유능한 선배님들의 편집, 디자인 작업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또 제가 만든 책으로 맺은 인연을 통해 또 다른 좋은 작품과 작가를 만나게 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림책 작가가 된 것도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계속 만들다 보니 저도 모르게 쓰게 된 것이죠. 내 안에서 쓰고 싶은 이야기의 씨앗들이 저도 모르게 자라고 있었고, 그걸 글로 적어봤더니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그림책 원고의 형식이었어요. 오랜 시간 그림책을 읽고 만들어 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체화된 것 같아요. 하지만 원고를 썼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다른 작가들과 똑같이, 완성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반려당하고, 수정하고, 또 투고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어느 새 그림책으로만 일곱 권을 출간했는데요. 한 권, 한 권 계약하고 출간하는 과정은 늘 어려운 것 같아요.
Q. 저는 선생님을 뵙기 전, 『안젤로와 곤돌라의 기나긴 여행』을 스튜디오 마르잔 김성미 대표님 소개로 알게 되어 읽어 보았습니다. 제가 읽은 모든 환경 그림책 중에 가장 시적인 그림책이었습니다. 어디서 영감을 얻으셨었는지, 작업 과정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집 고양이들은 늘 저를 새벽 5시쯤 깨워서 밥을 달라고 하는데요, 이 원고를 쓰게 된 날도 그랬어요. 새벽에 잠이 깨서,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들고 멍하니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냉장고 쪽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려왔어요. 고양이 녀석 중 하나가 제 관심을 끌려고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리였죠. 그런데 그 순간, 달그락 소리가 마치 물건이 제게 말을 거는 것처럼 들렸어요. “나 여기 있어. 너는 나를 잊었겠지만. 네가 죽더라도 나는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거야.” 컴퓨터를 켜고 그 목소리가 들리는 대로 원고를 적기 시작했어요. 냉장고 자석과 머그컵의 대화로 이루어진 긴 이야기였죠. 그렇게 『안젤로와 곤돌라의 기나긴 여행』의 초고가 완성되었어요.
환경이나 쓰레기 문제는 제가 늘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자 책에 담고 싶은 메시지들 중 하나였어요. 단지 적당한 글감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죠. 그런데 머그컵과 냉장고 자석의 대화를 쓰다 보니 자연스레 쓰레기 문제와 만나게 되었어요. 오래된 여행 기념품, 한때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잊히고, 버려져서, 쓰레기가 되어 버린 물건의 입장에서 쓰레기 문제를 이야기하는 거죠. 이 이야기를 쓰면서 무척 슬펐고, 어떤 장면은 울면서 쓰기도 했어요. 그래서 슬펐다는 소감들을 들려주시는 독자님들을 만날 때마다 기쁘답니다.
Q. 편집자이실 때의 모드와 작가로서의 모드가 매우 다를 것 같은데요, (마인드셋이나 작업 환경 등) 편집자로서 일하셨던 것이 어떤 부분에서는 도움이 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작가님으로서의 선생님을 괴롭히기도 할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편집자는 참 바빠요. 보통 열 권 정도는 늘 동시에 진행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최대한 시간을 쪼개 쓰면서 효율적으로, 정리해가며 일을 해야만 소홀함 없이 맡은 책들을 잘 진행시킬 수 있어요. 그런데 작가의 일이란 효율과는 거리가 멀더라고요. 마감 날짜는 다가오는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쓰거나, 쓴 문장을 다 지워버리는 날도 많으니까요. 또 원고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원고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이미 완성한 다른 원고의 문장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도 자주 일어나요. 이런 비효율과 무질서가 저에게는 일종의 죄책감을 안겨 주곤 했어요. 너무 무능한 인간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불과 작년에야 깨달았어요. 그렇게 비효율과 무질서를 견디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일이라는 것을요.
Q. 선생님이 쓰신 책 중에 가장 작업하시기 힘들었던 책은 무엇인가요? 이유도 궁금합니다.
『불어, 오다』가 가장 어려운 원고였어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다른 대상을 통해 이미지화하는 작업이었거든요. 게다가 그림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문장과 구성이어야 했고요. 원고가 완성된 뒤 이경국 선생님께서 스케치 작업까지 마치셨는데, 그제야 제 원고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바람’이 글 원고에서 제대로 이미지화되지 않은 상태였던 거예요. 그래서 출판사와 이경국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일 년 정도를 고민한 끝에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다시 썼어요. 그 과정이 무척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글과 그림의 완성도를 더 높여서 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또 그림책 작가로서도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수정 과정과 깨달음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림책 창작 기초 워크숍]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Q. 선생님의 작업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취미, 작업 혹은 일상 루틴 등등)은 무엇이 있을까요?
음악이 굉장한 도움이 돼요.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연주하거나 만들어 보면서 얻어지는 영감들이 있거든요. 올해는 기회가 없었지만, 작년까지는 뮤지컬 대본이나 작사 작업도 함께 해왔는데요. 음악 안에서 쓰이는 텍스트를 쓰는 일과 그림책의 텍스트를 쓰는 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지점도 있어요. 소리내어 읽는다(노래부른다)는 것과 짧고 단순한 구성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넣어야 한다는 점, 또 그림 작가(작곡가)와 독자(청취자)에게 시각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점은 매우 비슷하죠. 두 작업을 병행하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어요. 요즘도 영감이 필요할 때면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필사하거나 멜로디를 떠올리며 글을 쓰곤 해요.
Q. 그림책 외에 최근에 빠져있는 것이 있으신가요? 음식이랄지, 음악이랄지 그런 것이요.
저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꾸준히, 평생을 하는 편이에요. 음악에 관련된 취미(노래나 피아노 연주), 바느질이나 뜨개 등이 평생의 취미인데요. 요즘은 뜨개로 옷 만드는 재미에 빠져 있어요. 작은 조각들을 이어 입체적인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심지어 그것을 제가 입을 수 있다니! 너무 신기하답니다. 또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피아노를 연습해요.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은 없지만 제가 연주하는 곡과 제 손가락에 집중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세상에 음악과 저만 남은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어요!
Q. [그림책 창작 기초 워크숍]이 8월 첫 개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수업에서는 어떤 내용들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실 예정이신가요?
창작하고자 하는 이야기 혹은 글감과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대한 탐구가 주가 될 거예요. 자신이 창작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잘 맞는지 점검하게 될 거고, 잘 맞다면 그림책의 물성을 가장 잘 활용해서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향을 함께 찾아볼 겁니다. 또 하나의 글감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글감들을 함께 탐색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탐구하면서 이야기의 씨앗, 즉 앞으로 만들어갈 그림책 기획거리들을 여러 개 쌓아나가도록 유도할 거예요.
더불어 세 분의 선생님을 모시고 특강을 진행할 텐데요. 저와 오래 호흡을 맞춰온 디자이너이자 상상마당의 [볼로냐 그림책 워크숍]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시는 스튜디오 마르잔 김성미 실장님께서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그림책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실 예정이에요. 이장미, 홍선주 선생님께서는 그림책 작가가 일상에서 영감을 얻고 어떻게 흥미로운 장면으로 연출하는지, 실제 작업물들을 예로 들며 안내하실 예정입니다.
Q. 어떤 분들이 [그림책 창작 기초 워크숍] 수업을 들으면 좋을까요?
그림책은 글 원고와 그림 원고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림책 작가이지만 두 원고 중 어느 한쪽에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밸런스를 맞추는 데 이 수업이 분명 도움될 거예요. 또 동화를 써본 적은 있지만 그림책의 글은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글 작가들에게도 이 수업이 그림책 글을 쓰는 방법을 익히는 시간이 되리라 믿어요. 물론 그림책 창작에 처음 도전하는 미래의 그림책 작가님들도 환영합니다. ‘창작의 기초’를 다지는 수업이니까요!
Q. 그림책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꼭 이것 하나 만큼은 이야기 하고 싶다 하시는 것이 있을까요? (준비라든지, 역량이나 마인드라든지 경고(?)라든지 뭐든지요!)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하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림책 한 권이 출간되는 데 보통 1~2년의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기획 단계부터 고려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요. 저도 원고를 쓰고 계약을 맺고 책으로 출간하기까지 늘 2~3년의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게다가 그림책은 수명이 길잖아요. 내가 창작한 책이 지금 세대의 어린이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미래의 어린이들도 함께 읽는다고 인식한다면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죠. 그러니 빨리 그림책을 출간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조급함을 살짝 내려놓으시면 좋겠어요. 그래야만 그림책 작업의 지난한 과정이 조금은 더 수월하고 재미있게 느껴지실 거예요!
Q. 선생님의 다음 그림책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주제나 내용에 대한 힌트를 주실 수 있을까요?
『내 어깨 위의 두 친구』의 작가 이수연 선생님과 함께 ‘물’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만들고 있어요. 이수연 선생님의 아름다운 수채화에 제 글이 어우러질 생각을 하니 아찔하게 기쁩니다. 환경과 자연에 대한 그림책도 계속 창작하고 있어요. 『살아갑니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이장미 선생님과 함께 곤충을 통해 빛과 어둠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을 준비 중이에요. 두 권 모두 올해 출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마지막으로 그림책 작가 혹은 편집자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한 말씀 주신다면요?!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림책 창작과 편집도 끝없는 배움의 연속 같아요. 쉽게 완성되는 책은 없거든요. 매번 도전해야 할 과제가 생기고, 잘 몰랐던 것을 깨닫게 돼요. 그런데 작가에게는 편집자가, 편집자에게는 작가가 있잖아요. 작가에게 편집자란 어둠속에서 등불을 들고 길을 안내해주는 등등한 동반자와 같아요. 또 작가는 편집자에게 새로운 영감과 기획거리를 안겨주는 뮤즈와 같죠. 그림책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편집자, 혹은 작가와 함께 책을 완성해가는 즐거움을 꼭 한번 느껴보시면 좋겠어요!
*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은영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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