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줄 소설 공모전

올 해에도 또 열 줄이야

심사평


2025년 [열 줄 소설 공모전] 심사평


심사 총평



전건우 심사위원

 올해에도 열 줄 소설 공모전의 심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게는 이 심사가 더 이상 '일'이 아닌 일종의 '유희'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작품을 읽어야 하지만 그만큼 짜릿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죠! 올해는 유독 미시적인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가족'과 관련한 작품도 많았죠.. 이런 경향은 개인과 가족에 집중하고 일상을 소중히 보내려는 요즘의 추세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유독 올해의 작품들이 감동적이고 뭉클하게 만드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가운데에도 장르적 재미를 살린 날 선 작품도 있었고, 그런 이야기 역시 저를 짜릿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무리 짧은 이야기라도 일단 그것을 완성하고 나면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생깁니다. 올해 선정되신 분들 역시 그런 책임감을 느끼실 겁니다. 지금 이 작품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작품을 또 써보는 것입니다. 열 줄 소설 공모전이 누군가의 작가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기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점점 더 몸피를 불려서 더 긴 이야기로 거듭나는 것도 보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따뜻한 격려를 보냅니다.


전건우 작가

대학에서 해운경영학을 전공하고 6년간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다 2008년 『한국공포문학단편선』,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을 통해 데뷔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어둠, 그리고 그 속에 깃들어 있는 빛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호러 미스터리 소설을 쓰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 사려 깊은 이야기꾼. MBC 예능프로그램 〈능력자들〉 추리능력자편 출연. 장편소설 『밤의 이야기꾼들』, 『소용돌이』, 『고시원 기담』, 『금요일의 괴담회』, 『냉면』, 『한밤중에 나 홀로』 등다수 출간.




김학제 심사위원


올해 <열 줄 소설 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를 이어갈수록 더욱 빛나는 응모작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짧은 분량 안에서도 독자에게 다가가려는 정성 어린 노력이 전해졌고, 모든 응모자께 수고 많으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올해는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장르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던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좀비물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등 개성 있는 장르적 색채가 매력적으로 드러난 응모작들이 반가웠습니다. 또한 감동적인 연출에 집중하기보다 인물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고, 개별 인물의 삶을 세밀하게 담아내려는 시도가 늘어난 것도 뜻깊었습니다. 여기에 강렬한 반전 구조를 활용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습니다. 반전은 감동보다 먼저 놀라움을 선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서사 구조인데, 그 어려운 방식을 설득력 있게 구현한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띄었습니다.

매년 심사를 하며 <열 줄 소설 공모전>이 창작자와 독자가 함께 호흡하는 장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합니다. 응모작에 달린 다양한 반응을 통해 독자가 어디에서 멈추고, 어떤 문장에서 마음을 열었는지 생생히 알 수 있다는 점은 심사자로서도 큰 배움이 됩니다. 이러한 교류의 자리는 글을 쓰는 분들뿐 아니라, 저처럼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크나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의 ‘열 줄’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밀도 높았습니다. 다양한 상상력과 독창적인 정서가 어우러져, 열 줄이라는 짧은 지면 안에 얼마나 다채로운 얼굴이 담길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무대가 새로운 상상력과 깊은 서사를 길어 올리는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함께해 주신 모든 응모자와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학제 편집팀장

2016년 제1회 한국과학문학상과 함께 론칭한 과학 문학 전문 출판사 ‘허블’의 편집 팀장이다. '허블' 주최의 한국과학문학상을 통해 《관내분실 (김초엽 著)》,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著)》, 《천 개의 파랑 (천선란 著)》 등의 작품을 발굴, 국내 최초 휴고상 3년 연속 노미네이트 된 《나인폭스 갬빗 (이윤하 著)》 등을 출판하여 국내 SF 열풍을 견인했다.





작품 별 심사평


🥇대상  [김나비, 10개월] _ 윤서 작가

"아릿한 슬픔의 정서가 잘 담긴 작품입니다. 작가는 자칫 그냥 지나칠 수도 잇는 풍경을 붙잡아 글로 빚어내는 사람이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소설도 누군가는 지나쳤을 어떤 순간을 포착해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려 깊은 문장이 돋보였고, 마지막 구절은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_ 전건우 작가

"처음에는 담담한 장례 절차처럼 보이다가 뒤늦게 상황의 실체가 드러나며 강한 반전 효과를 주는 작품입니다. 작은 상자와 지의, 조발낭 같은 섬세한 디테일은 제도의 냉혹함을 드러내면서도 아이의 존재를 더욱 강하게 부각합니다. 건조한 서술과 마지막 자장가가 충돌하며 깊은 아이러니를 형성하고, 차갑게 굴러가는 절차 속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 작품의 정서를 극적으로 뒤집습니다." _ 김학제 편집팀장


🥈 최우수  [나잇값] _ 규빈 작가

"짧은 소설의 미덕과 매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촌철살인이 아닌가 합니다. 거기에 반전이 더해지면 금상첨화죠! 나잇값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살짝 비튼 이 작품은 촌철살인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누구나 경험해 봤을 만한 상황을 변주해 독자에게 익숙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재치있는 작품이네요!"  _ 전건우 작가 

"‘나잇값’을 가장 비싼 물건으로 내세운 발상이 우화적 재미를 줍니다. 전 재산을 털고 사라진 부자의 이야기가 그 발상에 힘을 보태며, 이후 아무도 가질 수 없는 값으로 자리 잡습니다. 마지막에 노인의 모습이 덧붙여지면서 설정이 일상의 장면과 연결되고, 값의 문제를 삶의 태도와 맞닿게 하는 지점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_ 김학제 편집팀장 


🥈  최우수  [예고사(豫告死)] _ 무르 작가

"스토리가 아주 잘 설계된 작품입니다. 결말의 충격도 꽤 좋았고, 무엇보다 짧은 분량 안에 기승전결이 잘 살아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예고사라는 소재를 그대로 가져와서 조금 더 긴 버전의 작품을 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잘 다루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네요!"  _ 전건우 작가

"죽음을 예고하는 설정을 사회적 담론과 연결해 확장한 발상이 돋보입니다. 죽음을 ‘처벌’로 받아들이는 시선과, 그에 기대 안도하려는 태도가 불러오는 긴장이 작품의 힘이 됩니다. 결국 화자가 낙인을 피하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말은 설정이 개인의 서사로 응축되는 순간을 선명히 각인시킵니다. 발상과 전개가 긴밀히 이어지며 서늘한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작품입니다." _ 김학제 편집팀장 


🥉 우수  [내 어깨에는 할머니가, 할머니의 어깨에는 내 손이] _ h 작가

"로봇의 애달픈 사연에 인간이 숙연해집니다. 이 작품은 드라마에 SF 장르를 잘 녹여냈습니다. 거기에 더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사랑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씁쓸한 감정이 몰려오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인상이 깊게 남는 소설이네요."  _ 전건우 작가

"처음에는 손주가 할머니를 돌보는 이야기처럼 읽히지만, 후반부 화자가 로봇임이 드러나는 전환이 신선합니다. ‘비가 오면 공기가 무겁다’는 디테일에서 시작된 돌봄의 기억이 기계적 프로그램과 겹치며 묘한 울림을 만듭니다. 마지막에 할머니가 새 돌봄 로봇을 자랑하는 장면이 더해지면서 따뜻함과 소외가 동시에 드러나는 인상적인 결말로 이어집니다." _ 김학제 편집팀장 


🥉 우수  [미러미(MirrorMe)] _  트리 작가

"섬뜩한 작품입니다. 저도 셀카를 찍으며 보정을 하는데요, 그러고는 살짝 죄책감을 느낀답니다. 이 작품은 그런 일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앱에서만 존재하게 될 때의 두려움, 섬뜩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네요!"  _ 전건우 작가

"셀카 어플 속 얼굴은 또렷해지지만 거울 속 얼굴은 흐려져 가는 발상이 인상적입니다. 화면과 거울의 대비가 자연스럽게 쌓이며 존재가 흔들리는 불안을 드러냅니다. 결말의 “존재하면서 동시에 사라진다”는 문장은 아이디어를 압축적으로 완성하며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기술적 장치를 통해 자기 인식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제시한 작품입니다." _ 김학제 편집팀장 


🥉 우수  [두 번째 버릇] _ 파편 작가

"저는 이 작품이 일종의 호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내가 '나'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정말로 무서울 것 같거든요. 그런 점에서 작가는 덤덤하면서도 세밀하게 이야기를 잘 풀어나갔습니다. 특히 여운이 남는 결말이 인상적이네요. 요즘 유행하는 '바디 호러'의 열 줄 소설 버전이라 해도 좋을 듯합니다!"  _ 전건우 작가

"가족과 친구들이 제각기 다른 얼굴로 인식한다는 설정이 신선합니다. 일상의 관계가 한순간에 낯설어지는 상황을 통해 타인의 시선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고유한 불안을 드러냅니다. 그 반복이 쌓이며 인물의 고립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거울 앞에서 ‘여전히 나’라 말하는 결말은 정체성과 존재감에 대한 아이러니를 강하게 남깁니다. 작품이 던지는 문제의식이 분명히 드러나는 글입니다." _ 김학제 편집팀장 


🥉 우수  [맞춤법 파괴자] _ 송민경 작가

"요즘은 맞춤법을 잘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죠. 반대로 그런 사람을 혐오하는 이들 역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맞춤법을 잘 틀리는 사람이 바로 우리 주위에 있다는 걸,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엄마와의 사이는 늘 왜 이리 힘들까요? 저 역시 좋은 아들이 되고 싶은데 늘 퉁명스러워지거든요. 엄마의 맞춤법은 틀려도 그분의 사랑은 틀림없다는 걸 저는 잘 압니다."  _ 전건우 작가

"맞춤법이 어긋난 문장을 서사의 한 축으로 삼은 발상이 눈길을 끕니다. 문자 속 뒤틀린 표현이 관계의 거리를 보여주고, 무뚝뚝한 대화와 겹치며 특유의 긴장을 형성합니다. 틀린 문장이 곧 정서의 흔들림으로 이어지면서 언어와 감정이 맞물리는 독특한 효과를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_ 김학제 편집팀장 


🥉 우수  [다시 태어나면 내 딸이 되어줄 수 있어?] _ 한지수 작가

"SF는 열 줄 소설의 단골 장르이죠. 이 작품은 SF가 지닌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무 먼 미래가 아닌 몇 년 후에 곧 벌어질 것 같은 사건을 소설에 잘 녹여냈습니다. 특히 문장을 만드는 솜씨가 꽤 능숙해서 읽는 재미가 커졌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_ 전건우 작가

"평범한 전화 통화와 가정의 소란으로 시작하지만, 문 앞에 선 인물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극적인 효과가 납니다. 아빠와 ‘새엄마’를 구분해 부르는 대화와 집 안의 풍경이 쌓여 있기에 50년 만에 돌아온 엄마의 등장은 더욱 선명합니다. SF적 상상력이 가족사와 맞물리며 낯선 조합이 매력을 더하고, 일상과 비범함이 교차하며 긴장과 애틋함을 함께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_ 김학제 편집팀장 


🥉 우수  [하기 싫지만 해야 할 때)] _ 김이박 작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당연하지 않게 잘 비튼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짧은 분량 속에서도 날 선 분위기를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작가가 이야기 전체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_ 전건우 작가

"어릴 적부터 들었던 말이 극적인 순간에 다시 등장하며 강한 인상을 줍니다. 평범한 교훈이 살인의 장면과 겹쳐 아이러니를 만들고, 마지막 문장이 불편한 긴장을 남깁니다. 짧은 분량 속에서 언어와 행위의 충돌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_ 김학제 편집팀장 


🥉 우수  [아무 말 말고 받아줘] _ 김지수 작가

"일상의 순간, 스쳐지나는 찰나, 그리고 금세 잊고 마는 어떤 지점을 이 작품은 끈질기게 탐구해 소설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상적이면서도 뭉클해요. 우린 누군가가 아마 말 없이 받아주길 원하는 사랑을 받으며 지금껏 잘 지내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_ 전건우 작가

"에어컨 메모와 약통, 반찬통 같은 구체적 장치들이 걱정과 미안함의 무게를 실감나게 전합니다. 그 위에 마지막에 내미는 만 원 한 장이 소박하지만 절절한 상징으로 다가와 관계의 온기를 남깁니다. 이렇게 쌓인 일상의 작은 장면들이 세대와 시간의 흐름을 압축해낸 작품입니다." _ 김학제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