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줄 소설 공모전

올 해에도 또 열 줄이야

심사평


2022년 [열 줄 소설 공모전] 심사평


심사 총평


■ 심사위원 :  전건우 작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열 줄 소설 공모전 심사를 맡을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또한 무척 즐거웠습니다. 기발하고 재기 넘치며 진심이 담긴 작품을 심사한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죠.  이번 심사를 하면서도 저는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란 역시 분량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제가 읽은 모든 작품들은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훌륭했습니다. 열 줄이라는 분량의 한계는 분명했지만 그걸 아득히 뛰어넘는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었습니다.  올해에는 작년에 비해 장르가 고루 분포되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SF에서부터 스릴러, 호러, 코미디, 그리고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로 빚어낸 짧은 이야기들은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심사하는 동안 제 무릎이 꽤 고생했죠.

특히 제가 즐거웠던 부분은 어떤 장르라 해도 그 안에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열 줄 소설에 응모한 분들 대부분이 허공이 아닌 현실의 바닥에서 이야기를 캐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야기는 신기루처럼 허공을 떠다니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힌 채, 어깨를 구부정하게 만든 다음 현실을 오래 바라본다면 그 속에 깃든 생생한 이야기를 캐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열 줄짜리 이야기를, 때로는 단편 분량의 이야기를, 또 때로는 장편 분량의 이야기도 가능하겠죠.

저는 이번에 응모하시고 또 수상하신 분들이 여기서 이야기 쓰기를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열 줄의 이야기를 썼다면 그 다음에는 스무 줄, 또 그 다음에는 서른 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다음 이야기를 기꺼이 쓸 용기를 냈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단 몇 줄의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니요. 다만 한 사람의 인생은 바꿀 수 있습니다. 직접 경험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니 믿어도 좋습니다. 제 무릎을 기꺼이 아프게 만들어 주신 여러분, 또 다른 공모전, 그리고 또 다른 자리에서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건우 작가

대학에서 해운경영학을 전공하고 6년간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다 2008년 『한국공포문학단편선』,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을 통해 데뷔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어둠, 그리고 그 속에 깃들어 있는 빛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호러 미스터리 소설을 쓰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 사려 깊은 이야기꾼. MBC 예능프로그램 〈능력자들〉 추리능력자편 출연. 장편소설 『밤의 이야기꾼들』, 『소용돌이』, 『고시원 기담』, 『금요일의 괴담회』, 『냉면』, 『한밤중에 나 홀로』 등다수 출간.


■ 심사위원 :  임태운 작가

 흔한 오해와 달리 창의력은 자유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강력한 제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뛰어난 성취는 언제나 기술의 한계, 형태의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돌연변이같은 시도에서 만들어졌다. 그런 면에서 이번 공모전의 심사는 열 줄이라는 ‘가혹하게까지 느껴지는 한계’를 거침없이 무너뜨리겠다는 야심찬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비율적으로는 웃음이나 훈훈함을 불러일으키는 귀여운 이야기보다는 상실과 추락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는 건 심사위원을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디어 하나에 의존하기보단 한 문장 한 문장 탑을 쌓는 장인의 심정으로 공들인 이야기들을 꼽을 수 있었다. 최종심에서 탈락한 이야기 중에선 안타깝기 그지없는 경우도 많았다. 비록 이번 공모전에서 수상의 성과를 못올렸다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창작에 도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임태운 작가

2007년 장편소설 《이터널 마일》로 한국전자출판협회 제2회 디지털작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마법사가 곤란하다》, 장편소설 《태릉 좀비촌》, 《화이트블러드》를 펴냈고,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그것들》, 《앱솔루트 바디》 등 다수의 앤솔러지에 작품을 수록했다. 《장르의 장르》, 《한국 창작 SF의 거의 모든 것》에 참여하며 SF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 바 있다. 건빵 봉지 속 별사탕처럼 읽는 이의 가슴에 당분처럼 스며드는 소설을 쓰고 있다. 



작품 별 심사평


 대상 : [사랑해가 실종됐다] _ 박시현 작가

"사랑해가 실종된 이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모든 이야기 중 가장 사랑스러웠습니다. 우리의 빈약한 어휘력으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채워나가는 수많은 다른 표현들, 그것을 아이들이 먼저 찾아냈다는 설정도 참 아름답습니다. 마침내 사랑해가 돌아왔다는 결말에 이르러서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습니다."  _ 심사위원 전건우 작가

 " <사랑해가 실종됐다>는 담백한 문장으로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여보는 범상치 않은 이야기였다. 사랑한다는 말이 실종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 작가는 적극적으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를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 _임태운 작가


 최우수 : [죽음] _ 김덕팔 작가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의 기운을 풍기며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삶이 힘든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누구나 한 번은 편안한 안락사에 대해 생각해 봤겠죠. 어떤 나라에서는 실제로 고통 없이 안락사를 할 수 있는 기계가 나왔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요? 작가의 기발한 상상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고 그것이 이야기로 만들어졌을 때 생각 못한 결말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_ 심사위원 전건우 작가

 " 응모작 중에서 SF물이 꽤 많았지만 사실 낯선 세계를 보여주며 판타지와 달리 논리도 첨부해야 하는 SF는 이런 초단편에는 까다로운 장르다. 하지만 까다롭다고 해서 도전을 멈추지 않으면 <죽음>처럼 섬뜩하고 비릿한 충격을 주는 멋진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_임태운 작가


 최우수 : [거짓말] _ 규빈 작가

"이런 작품을 블랙 코미디라고 합니다. 거창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 같다가 엇박자의 유머로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구성. 이런 구성은 의외로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그것을 아주 능숙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한 마디를 살짝 비틀어서 이야기의 반전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작가가 고심을 많이 했다는 뜻이기도 하죠."  _ 심사위원 전건우 작가

 "<거짓말>은 마지막 한 문장에 승부를 거는 깔깔유머식 작품이다. 하지만 잘 만든 유머가 그렇듯이 한 번 읽고 나서 웃고 넘기는 게 아니라 재차 읽어보며 음미할 수 있는 구성을 갖고 있다." _임태운 작가


 우수 : [마법의 편지] _ 서경희 작가

"분명 익숙한 구조의 이야기고,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묵직한 감상을 전하는 것은 여러 사람마다 어떤 식으로 그 편지를 읽었을 지를 상상하면 괜스레 슬픔과 감동이 차오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알고 있던 게 아닐까요? 그런 상상마저 하게 되는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_ 심사위원 전건우 작가

 " <마법의 편지>는 읽지도 못하는 편지를 들고 다니는 노인의 이야기다. 단 한 줄이 적혀 있는 편지의 내용을 알게 되는 순간 독자는 멈춰서서 짙은 블랙 커피처럼 이야기가 주는 향기에 매료되게 된다. 그 편지를 남긴 누군가의 마음을 살펴보고 싶어진다는 점에서 독자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강력한 엔딩을 추천한다." _임태운 작가


 우수 : [단 하루] _ 이현주 작가

"짧지만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죽은 아이는 꿈에서라도 엄마와 이야기하기를 원하고, 엄마는 밤을 새서라도 아이 얼굴 한 번 보기를 원합니다. 그 엇갈림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언젠가 이 아이와 엄마가 꼭 한 번 만나기를 바랍니다."  _ 심사위원 전건우 작가

 "  초단편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반전이다. <단 하루>는 엄마에게 투덜대는 주인공의 일상적인 언어로 진실이 드러났을 때 먹먹한 정서를 안겨준다. 열 줄로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촘촘한 설계가 인상적이다." _임태운 작가


 우수 : [날개 달린 오리너구리목 날개 달린 오리너구리과 날개 달린 오리너구리류] _ 박인하 작가

"재치 있는 말재간에 연신 웃었던 작품입니다. 한편으로는 오리너구리에도, 조류에도 속할 수 없는 밥바의 비애와 난처함이 느껴져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너무 긴 이름이 붙어버린 밥바는 이름 없는 나뭇잎이 되고 싶어 하지만 친구인 나뭇잎은 반대로 밥바가 되고 싶죠. 각자의 욕망마저 어긋나며 이 작품 특유의 씁쓸한 정서가 잘 살아납니다."  _ 심사위원 전건우 작가

 "  <날개 달린 오리너구리>의 동화적인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묘사와 능숙하게 사용하는 모호함이 특유의 세계관을 엿보여주게 한다. 이토록 짧은 문장으로 작가의 세계를 궁금하게 만들었다는 건 대단한 업적이다." _임태운 작가


 우수 : [바보 형] _ 호미 작가

"전형적인 괴담을 한 번 더 비튼 호러 장르의 이야기입니다. 플롯이 예상대로 흘러가는 상황에서도 아이의 마지막 대사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독자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분량에서 이 정도의 오싹함을 선사하기란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_ 심사위원 전건우 작가

 " <바보 형>은 아주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공포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비가 많이 오는 여름밤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박을 먹으며 나누었던 괴담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완벽하게 선물해준다. 마지막 문장의 임팩트도 훌륭하다." _임태운 작가


 우수 : [고양이의 아홉 번째 유서] _ 김민기 작가

"고양이가 남긴 유서를 해독할 수 있는 주인공은 마지막 유서를 더듬어 읽으며 슬픔을 다스릴 뿐입니다. 고양이라는 존재가 가진 특별한 이미지가 짧은 문장 속에서 잘 드러나 있고 거기에 슬픔의 정서가 찰랑이기 직전까지 고여 있는 이 작품은 나를 스쳐간 여러 사랑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합니다."  _ 심사위원 전건우 작가

 " <고양이의 아홉 번째 유서>는 애묘인으로서 집중하고 읽은 작품이다. 고양이 이야기가 꽤 많이 보였는데도 그 중에서 단연 깔끔한 문장과 절제된 스타일이 돋보였다. 더 긴 글을 써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_임태운 작가


 우수 : [바르셀로나] _ 양경준 작가

"사랑의 환상, 행복, 즐거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랑이 휘발되었을 때 남은 미련과 아쉬움이 이 작품 안에 빼곡하게 들어 있습니다. 부산을 바르셀로나로 불렀다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이 환상적으로 변합니다. 바르셀로나 표 돼지국밥을 먹었던 연인들은 지금 어떤 나라에서 각각의 사랑을 하고 있을까요?"  _ 심사위원 전건우 작가

 "  <바르셀로나>는 다 읽고 나서 한참을 아무 것도 못 할만큼 먹먹한 이야기다.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은 집중력과 훨씬 슬프게 표현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결코 독자보다 먼저 울지 않는 작가의 인내력에 감탄했다. 반전을 무기로 사용하지도 않고, 뚜렷한 플롯이 보이지도 않지만 <바르셀로나>는 자신만의 무기로 감정을 큰 북처럼 두드린다." _임태운 작가


 우수 : [비밀] _ 유운 작가

"비밀이 소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토록 간략하면서도 촘촘하게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요? 그러고 보면 비밀과 소문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습니다. 비밀이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 그것이 바로 소문이 되니까요. 어쩌면 이 작품은 미스터리이자 스릴러이고 호러일수도 있겠네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_ 심사위원 전건우 작가

 " <비밀>이 반가운 점은 아주 일상적인 소재를 갖고 빚어올린 이야기라는 점이다. 흔히 소품이라고들 말하지만 소품이 결코 가치가 낮은 건 아니다. 다 읽고 나면 우리네 세상살이에 대한 살냄새나는 공감이 독자를 웃음짓게 한다." _임태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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