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취미에 진심인_편>에서는 각양각색의 취미에 진심인 취미인(人)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거예요. ‘이런 것도 취미가 될 수 있구나’하는 이색 취미부터 내 주변에서도 즐기는 사람이 있을 법한 공감 백배의 취미들까지 모아보았어요. 이번 주제는 뜨개질입니다. 올 겨울은 따뜻하고 아늑한 나만의 공간에서 뜨개질 어떠실까요? 나나 취미인의 포근한 뜨개질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찬바람 불면 대바늘을 꺼내는 겨울의 뜨개질러
“
뜨개질은 실과 바늘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자세한 도안 없이 내 입맛대로 늘리고 줄여도 돼요.
자수나 비즈 등은 미적 감각이 있어야 예쁜 결과물이 나오는데,
뜨개질에는 단순노동이 더 중요해서요. 미적 감각이 없다고 못생긴 목도리가 나오지 않아요!
”
안녕하세요! 매해 추운 겨울바람이 불면 대바늘을 꺼내는, 5년차 겨울의 뜨개질러 나나입니다. 5년차라기엔 겨울에만 찔끔거려서 실력은 썩 좋지 않지만요. 하하. 제 별명 중 하나가 유럽 할머니예요. 저는 뜨개질, 비즈, 액세서리 만들기, 프랑스 자수, 베이킹 등등 손으로 꼼작거리는 걸 좋아해요. 산속 통나무집에 벽난로 불 피우고 흔들의자에서 뜨개질 하고 살고 싶다고 했다가 그거 유럽 할머니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제 취미들 전부 결과물이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살다보면 결과물 없이 사라지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내 탓이 아니어도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저는 자존감이 많이 깎이더라고요. 그런 저에게 너무너무 필요한 취미들이에요. 영화나 야구를 보는 건 감정 소모가 심해서 기분이 오히려 침잠될 때가 있는데, 유럽 할머니 취미들은 저를 수렁에서 꺼내줘요.
그 중 뜨개질이 좋은 건, 많은 재료와 특별한 장소가 필요 없다는 거예요. 다른 것들은 준비해야 하는 재료들도 많고 장소의 제약이 많은데, 뜨개질은 실과 바늘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자세한 도안 없이 내 입맛대로 늘리고 줄여도 돼요. 자수나 비즈 등은 미적 감각이 있어야 예쁜 결과물이 나오는데, 뜨개질에는 단순노동이 더 중요해서요. 미적 감각이 없다고 못생긴 목도리가 나오지 않아요! 하하.
“
요즘은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뜨개질방이 흔했어요.
거기 계신 아주머니들은 뜨개질하는 손은 보지도 않고
일상 대화를 하면서 손을 움직이는데, 그게 쑥쑥 늘어나서
어느새 조끼가 되고 스웨터가 되는 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
뜨개질을 처음 해본 건 초등학생 때예요. 요즘은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뜨개질 방이 흔했어요.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뜨개질을 하고 뜨개실을 팔고 뜨개질 강습을 하는 곳이었는데, 거기 계신 아주머니들은 다 숙련자들이셨거든요. 너무 어려워 보이는데도 아주머니들이 뜨개질하는 손은 보지도 않고 일상 대화를 하면서 손을 움직이는데, 그게 쑥쑥 늘어나서 어느새 조끼가 되고 스웨터가 되는 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무작정 엄마한테 “나도 뜨개질 할래!”하고 같이 가서 실을 골랐던 기억이나요.
사장님께서 첫코를 잡아주시고, 몇 단 뜨는 걸 배운 후 집으로 돌아와서 뜨개질을 했어요. 실 방향을 잘못 잡아서 코가 하나 늘어있으면 엄마가 고쳐주셨죠. 인내심 없는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수차례 내팽개치며 일주일가량을 끙끙대다 2미터가 넘는 목도리 하나를 완성했어요. 초등학생의 첫 뜨개질인데 잘 떠봐야 얼마나 잘 떴겠어요. 손힘이 제멋대로라 삐뚤빼뚤하고, 실버사이버틱한 보라색에다 두께가 제멋대로인 실을 골라서 예쁘지도 않아, 실제로 두르고 나간 건 손에 꼽아요.
| |
과정도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고,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서 다시 할 일은 없겠구나… 했는데. 몇 년 전에 쁘띠 목도리가 유행이었을 때, 모 블로그에 서너 시간이면 쁘디 목도리 하나를 뜰 수 있다는 글을 봤어요. 나쁜 경험도 경험이라고 '어릴 때 뜨개질 했는데 ...나 잘 할지도?' 하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서너 시간이면 뜬다고 하니 망하더라도 해볼 만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뜨개실을 사러 동대문으로 갔어요. 나름 괜찮은 실로 네 타래 구입하고, 서랍 깊숙한 곳에 몇 년을 처박아둔 대바늘도 꺼내고. 그렇게 쁘띠 목도리 뜨개질을 시작했는데, 분명히 정신 차리고 했는데도 초반엔 왠지 코가 하나씩 늘어있더라고요. 적당히 큰 목도리였다면 대충 한 코 줄여가며 뜨겠지만 고작 여덟 코짜리 목도리에서는 티가 많이 나서 어쩔 수 없이 바늘을 빼고 실을 풀었어요. 잘못 뜬 부분까지만 풀고 다시 뜨려고 했는데, 초보자는 실 방향에 맞게 다시 바늘을 꿸 수 없었답니다ㅠㅠ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수차례. 제가 본 블로그에서는 서너 시간이라고 했는데, 숙련자에게 서너 시간이라면 초보자에게는 두 배, 그 이상의 시간이 든다는 걸 늦게 깨달았어요. 여차저차해서 다 뜬 목도리는 우와,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거예요. 귀엽고 따뜻하고 몇 번 풀었다 다시 뜨기를 반복하면서 예상 밖의 경험치도 쌓였던 건지 디테일도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그때 뜨개질에 재미를 느꼈어요. 그 이후로 어쩌다보니 매 해 겨울만 되면 뜨개질을 하고 있네요.
올 겨울엔 내가 만든 귀도리를 써야지
|
“
해결 안 되는 고민만 계속 생각나 스스로를 갉아먹던 시기였는데
뜨개질을 하는 동안엔 잠시나마 고민이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한두 시간 머리를 비우며 뜨개질 하고 나면 한 뼘 정도의 결과물이 손에 놓이는데,
삐뚤빼뚤 엉망일 지라도 손으로 쭉쭉 잡아당겨주면 꽤 괜찮아 보여요.
”
생각이 많은 분, 지치신 분께 뜨개질을 추천해요. 뜨개질을 시작했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을 때였어요. 영화를 봐도 집중이 안 되고, 산책을 가도 마음이 평온해 지기는커녕 해결 안 되는 고민만 계속 생각나 스스로를 갉아먹던 시기였는데 뜨개질을 하는 동안엔 잠시나마 고민이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한두 시간 머리를 비우며 뜨개질 하고 나면 한 뼘 정도의 결과물이 손에 놓이는데, 삐뚤빼뚤 엉망일 지라도 손으로 쭉쭉 잡아당겨주면 꽤 괜찮아 보여요. 고작 하나의 줄이던 실이 엮여서 무언가가 됐다는 걸 보면 ‘결국 나도 괜찮아지지 않을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나더라고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만 반복적인 작업에 쉽게 질릴 것 같다면 목표를 세워보세요.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거나, 올 겨울에는 내가 만든 귀도리를 쓰겠다던가 하는 목표를 세우면 좋더라고요. 그리고 피부에 닿는 물건을 만드실 거라면 실은 꼭 만져보고 구입하세요. 울 비율과 상관없이 까슬까슬하거나 털 빠짐이 있을 수 있어요.
손으로 뜬 제품보다 기계로 뜬 제품이 더 균일하고 깔끔한데 뭐 하러 굳이 손으로 뜨개질 하냐고 하면 사실 틀린 말이 없죠. 하지만 인생이 효율적이고 편하고 예쁘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귀찮고, 못생겼더라도 내가 직접 만들어 가는 거 아니겠어요? 하하.
캐롤, 간식, 와인을 즐기며 뜨개질
“ 뜨개질할 때 음악은 캐롤을 많이 들어요. 실이 손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고 포근해서 캐롤과 함께 하면 벌써 마음이 따뜻해져요. 영화는 한국 코미디 영화를 즐겨 봐요. 뜨개질에 집중하다 보면 장면을 놓치기 쉬워서 복잡한 영화나 외화보다는 코미디 영화가 좋더라고요. ” |
저는 집에서 주로 뜨개질을 하는 곳을 뜨개 존(zone)이라고 불러요. 옷장과 책장 사이 1제곱미터 정도 되는 공간이에요. 구석에서 뜨개질을 할 때 마음의 안정감이 느껴져서 그 장소로 정했어요. 탁상을 뜨개존으로 옮기고 음악이나 영상을 틀 플레이어, 손에 묻지 않고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 음료(와인 강추)를 준비해요. 옷은 무조건 포근한 잠옷(수면잠옷 강추)을 입어요. 그리고 뜨개질을 시작하면, 그 1제곱미터의 공간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처럼 느껴져요.
뜨개질할 때 음악은 캐롤을 많이 들어요. 실이 손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고 포근해서 캐롤과 함께 하면 벌써 마음이 따뜻해져요. 영화는 한국 코미디 영화를 즐겨 봐요. 뜨개질에 집중하다 보면 장면을 놓치기 쉬워서 복잡한 영화나 외화보다는 코미디 영화가 좋더라고요. (막장드라마도 좋아요)
뜨개질의 매력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밖에서 뜨개질하기도 해요. 심지어 야구장에서도요. 당시 선물할 목도리를 뜨던 중이었는데, 다 뜨려면 한참 남았는데 친구가 야구장에 가자고 해서 뜨개질 거리를 가져갔어요. 친구 기다리면서 지하철역에 앉아서 뜨고, 경기 시작 전에도 떴어요. 경기 진행 중에도 뜨려고 했는데 너 그러다 TV 나온다는 말에 조심스레 집어넣었죠. (그 날 경기가 재밌기도 했어요 하하.) 결국 선물할 날짜 맞추느라 밤을 샜더랬죠.
생각이 많을 땐 뜨개질!
“
뜨개질을 하면서 변한 점들이 있어요.
예쁜 니팅제품을 보면 사고 싶다가 아니라 나도 뜨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낙관적 생각이 짙어진 것 같아요.
복잡한 생각을 비우고 예쁜 니팅제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뜨개질을 추천해요.
”
뜨개질을 하면서 실수할 때도 있어요. 요즘은 밍크실로 귀도리를 뜨고 있는데요, 몇 코씩 늘리고 줄었는지 적어둔 종이를 잃어버려서 몇 코씩 늘렸는지, 늘려서 몇 줄 떴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일반적인 실이면 매듭이 보여서 세면 될 텐데, 밍크 털은 매듭이 잘 안 보여서 셀 수도 없어요. 게다가 이미 한 번 종이에 안 적어두고 떴다가, 기억이 안 나서 다시 뜨는 거였거든요. 종이를 잃어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떠야할 것 같아요. 한쪽 귀만 뜨면 끝인데...! 다음에는 종이 말고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둬야겠어요 흑흑
뜨개질을 하면서 변화 점들이 있어요. 예쁜 니팅제품을 보면 사고 싶다가 아니라 나도 뜨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낙관적 생각이 짙어진 것 같아요. 복잡한 생각을 비우고 예쁜 니팅제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뜨개질을 추천해요. 뜨개질 방이 줄어 들면서 재료 구매가 까다로워지긴 했지만, 인터넷 쇼핑몰도 많고 2년 전 쯤부터 다이소에 뜨개질 용품도 많아진 덕에 3천원이면 실 두 타래와 대바늘을 구매할 수 있답니다! 저는 뜨던 귀도리를 다 뜨고 코바늘 뜨개질을 도전해 보려고요!
초보자도 뜨기 쉬운 뜨개질 용품
귀도리, 쁘띠 목도리를 추천해요. 초보자라고 해도 반나절이면 하나를 완성할 수 있어요. 이 귀도리는 제가 다이소에서 구매한 소프트 뜨개실 한 타래와 8mm 대바늘로 만든으로 만든 거랍니다! 재료비는 2000원 정도 들었어요. 귀도리를 뜨려면 코 늘이기, 줄이기, 걸러뜨기 등 약간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어서 그런 거 싫다 하신다면 쁘띠 목도리를 추천해요. 그냥 목도리는 넓고 길어서 한참 떴어도 아직 남았다는 걸 보면 그만두고 싶어질 수도 있거든요. 코바늘을 쓰신다면 곱창머리끈이나 수세미도 비교적 쉬운 편이에요.
초보자들이 뜨개질 할 때 신경 쓰면 좋은 점
최대한 꽉꽉 당겨서 힘줘서 뜨는 게 좋아요. 능숙해져서 균일하게 힘을 준다면 상관없지만, 처음 몇 줄은 바늘과 붙어있어서 정말 뻑뻑한데, 거기서 뻑뻑하다고 그 후에 설렁설렁 뜨면 다 뜨고 봤을 때 그 부분만 헐거울 수도 있어요.
뜨개질 정보를 얻는 곳
1) 유튜브 <바늘이야기 김대리>
뜨개질의 신이십니다. 언젠가 하나는 따라 해보겠다는 욕구가 생기게 하는 곳이에요.
2) 동대문 상가
동대문 상가에 가면 뜨개실 가게들이 모여 있어요. 아무래도 실은 인터넷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직접 실을 만져보고 울 함유량 등을 확인하고 구매하시는 걸 추천해요. 저는 주로 동대문 상가 지하1층으로 갔어요.
3) 뜨개질 공방
제가 다니던 곳은 없어졌는데, 홍대 근처에는 뜨개질 공방들이 많아요. 공방에 가면 대바늘 외에 코바늘 뜨개 등을 가르쳐 주세요.
#뜨개질 #겨울취미 #만들기 #잡념비우기
취미인 | 나나
회원가입 후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신 분 중 3 분에게는 백화점 상품권 5만원을 드립니다.
이벤트 기간 : ~ 2022년 12월 5일(월) 오후 3시까지
편집자의 말
<취미에 진심인_편>에서는 각양각색의 취미에 진심인 취미인(人)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거예요. ‘이런 것도 취미가 될 수 있구나’하는 이색 취미부터 내 주변에서도 즐기는 사람이 있을 법한 공감 백배의 취미들까지 모아보았어요. 이번 주제는 뜨개질입니다. 올 겨울은 따뜻하고 아늑한 나만의 공간에서 뜨개질 어떠실까요? 나나 취미인의 포근한 뜨개질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찬바람 불면 대바늘을 꺼내는 겨울의 뜨개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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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은 실과 바늘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자세한 도안 없이 내 입맛대로 늘리고 줄여도 돼요.
자수나 비즈 등은 미적 감각이 있어야 예쁜 결과물이 나오는데,
뜨개질에는 단순노동이 더 중요해서요. 미적 감각이 없다고 못생긴 목도리가 나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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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매해 추운 겨울바람이 불면 대바늘을 꺼내는, 5년차 겨울의 뜨개질러 나나입니다. 5년차라기엔 겨울에만 찔끔거려서 실력은 썩 좋지 않지만요. 하하. 제 별명 중 하나가 유럽 할머니예요. 저는 뜨개질, 비즈, 액세서리 만들기, 프랑스 자수, 베이킹 등등 손으로 꼼작거리는 걸 좋아해요. 산속 통나무집에 벽난로 불 피우고 흔들의자에서 뜨개질 하고 살고 싶다고 했다가 그거 유럽 할머니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제 취미들 전부 결과물이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살다보면 결과물 없이 사라지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내 탓이 아니어도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저는 자존감이 많이 깎이더라고요. 그런 저에게 너무너무 필요한 취미들이에요. 영화나 야구를 보는 건 감정 소모가 심해서 기분이 오히려 침잠될 때가 있는데, 유럽 할머니 취미들은 저를 수렁에서 꺼내줘요.
그 중 뜨개질이 좋은 건, 많은 재료와 특별한 장소가 필요 없다는 거예요. 다른 것들은 준비해야 하는 재료들도 많고 장소의 제약이 많은데, 뜨개질은 실과 바늘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자세한 도안 없이 내 입맛대로 늘리고 줄여도 돼요. 자수나 비즈 등은 미적 감각이 있어야 예쁜 결과물이 나오는데, 뜨개질에는 단순노동이 더 중요해서요. 미적 감각이 없다고 못생긴 목도리가 나오지 않아요! 하하.
뜨개질을 다시 할 일은 없겠구나,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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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뜨개질방이 흔했어요.
거기 계신 아주머니들은 뜨개질하는 손은 보지도 않고
일상 대화를 하면서 손을 움직이는데, 그게 쑥쑥 늘어나서
어느새 조끼가 되고 스웨터가 되는 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
뜨개질을 처음 해본 건 초등학생 때예요. 요즘은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뜨개질 방이 흔했어요.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뜨개질을 하고 뜨개실을 팔고 뜨개질 강습을 하는 곳이었는데, 거기 계신 아주머니들은 다 숙련자들이셨거든요. 너무 어려워 보이는데도 아주머니들이 뜨개질하는 손은 보지도 않고 일상 대화를 하면서 손을 움직이는데, 그게 쑥쑥 늘어나서 어느새 조끼가 되고 스웨터가 되는 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무작정 엄마한테 “나도 뜨개질 할래!”하고 같이 가서 실을 골랐던 기억이나요.
사장님께서 첫코를 잡아주시고, 몇 단 뜨는 걸 배운 후 집으로 돌아와서 뜨개질을 했어요. 실 방향을 잘못 잡아서 코가 하나 늘어있으면 엄마가 고쳐주셨죠. 인내심 없는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수차례 내팽개치며 일주일가량을 끙끙대다 2미터가 넘는 목도리 하나를 완성했어요. 초등학생의 첫 뜨개질인데 잘 떠봐야 얼마나 잘 떴겠어요. 손힘이 제멋대로라 삐뚤빼뚤하고, 실버사이버틱한 보라색에다 두께가 제멋대로인 실을 골라서 예쁘지도 않아, 실제로 두르고 나간 건 손에 꼽아요.
과정도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고,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서 다시 할 일은 없겠구나… 했는데.
몇 년 전에 쁘띠 목도리가 유행이었을 때, 모 블로그에 서너 시간이면 쁘디 목도리 하나를 뜰 수 있다는 글을 봤어요. 나쁜 경험도 경험이라고 '어릴 때 뜨개질 했는데 ...나 잘 할지도?' 하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서너 시간이면 뜬다고 하니 망하더라도 해볼 만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뜨개실을 사러 동대문으로 갔어요. 나름 괜찮은 실로 네 타래 구입하고, 서랍 깊숙한 곳에 몇 년을 처박아둔 대바늘도 꺼내고. 그렇게 쁘띠 목도리 뜨개질을 시작했는데, 분명히 정신 차리고 했는데도 초반엔 왠지 코가 하나씩 늘어있더라고요. 적당히 큰 목도리였다면 대충 한 코 줄여가며 뜨겠지만 고작 여덟 코짜리 목도리에서는 티가 많이 나서 어쩔 수 없이 바늘을 빼고 실을 풀었어요. 잘못 뜬 부분까지만 풀고 다시 뜨려고 했는데, 초보자는 실 방향에 맞게 다시 바늘을 꿸 수 없었답니다ㅠㅠ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수차례. 제가 본 블로그에서는 서너 시간이라고 했는데, 숙련자에게 서너 시간이라면 초보자에게는 두 배, 그 이상의 시간이 든다는 걸 늦게 깨달았어요.
여차저차해서 다 뜬 목도리는 우와,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거예요. 귀엽고 따뜻하고 몇 번 풀었다 다시 뜨기를 반복하면서 예상 밖의 경험치도 쌓였던 건지 디테일도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그때 뜨개질에 재미를 느꼈어요. 그 이후로 어쩌다보니 매 해 겨울만 되면 뜨개질을 하고 있네요.
올 겨울엔 내가 만든 귀도리를 써야지
“
해결 안 되는 고민만 계속 생각나 스스로를 갉아먹던 시기였는데
뜨개질을 하는 동안엔 잠시나마 고민이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한두 시간 머리를 비우며 뜨개질 하고 나면 한 뼘 정도의 결과물이 손에 놓이는데,
삐뚤빼뚤 엉망일 지라도 손으로 쭉쭉 잡아당겨주면 꽤 괜찮아 보여요.
”
생각이 많은 분, 지치신 분께 뜨개질을 추천해요. 뜨개질을 시작했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을 때였어요. 영화를 봐도 집중이 안 되고, 산책을 가도 마음이 평온해 지기는커녕 해결 안 되는 고민만 계속 생각나 스스로를 갉아먹던 시기였는데 뜨개질을 하는 동안엔 잠시나마 고민이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한두 시간 머리를 비우며 뜨개질 하고 나면 한 뼘 정도의 결과물이 손에 놓이는데, 삐뚤빼뚤 엉망일 지라도 손으로 쭉쭉 잡아당겨주면 꽤 괜찮아 보여요. 고작 하나의 줄이던 실이 엮여서 무언가가 됐다는 걸 보면 ‘결국 나도 괜찮아지지 않을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나더라고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만 반복적인 작업에 쉽게 질릴 것 같다면 목표를 세워보세요.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거나, 올 겨울에는 내가 만든 귀도리를 쓰겠다던가 하는 목표를 세우면 좋더라고요. 그리고 피부에 닿는 물건을 만드실 거라면 실은 꼭 만져보고 구입하세요. 울 비율과 상관없이 까슬까슬하거나 털 빠짐이 있을 수 있어요.
손으로 뜬 제품보다 기계로 뜬 제품이 더 균일하고 깔끔한데 뭐 하러 굳이 손으로 뜨개질 하냐고 하면 사실 틀린 말이 없죠. 하지만 인생이 효율적이고 편하고 예쁘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귀찮고, 못생겼더라도 내가 직접 만들어 가는 거 아니겠어요? 하하.
캐롤, 간식, 와인을 즐기며 뜨개질
“
뜨개질할 때 음악은 캐롤을 많이 들어요.
실이 손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고 포근해서 캐롤과 함께 하면 벌써 마음이 따뜻해져요.
영화는 한국 코미디 영화를 즐겨 봐요. 뜨개질에 집중하다 보면 장면을 놓치기 쉬워서
복잡한 영화나 외화보다는 코미디 영화가 좋더라고요.
”
저는 집에서 주로 뜨개질을 하는 곳을 뜨개 존(zone)이라고 불러요. 옷장과 책장 사이 1제곱미터 정도 되는 공간이에요. 구석에서 뜨개질을 할 때 마음의 안정감이 느껴져서 그 장소로 정했어요. 탁상을 뜨개존으로 옮기고 음악이나 영상을 틀 플레이어, 손에 묻지 않고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 음료(와인 강추)를 준비해요. 옷은 무조건 포근한 잠옷(수면잠옷 강추)을 입어요. 그리고 뜨개질을 시작하면, 그 1제곱미터의 공간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처럼 느껴져요.
뜨개질할 때 음악은 캐롤을 많이 들어요. 실이 손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고 포근해서 캐롤과 함께 하면 벌써 마음이 따뜻해져요. 영화는 한국 코미디 영화를 즐겨 봐요. 뜨개질에 집중하다 보면 장면을 놓치기 쉬워서 복잡한 영화나 외화보다는 코미디 영화가 좋더라고요. (막장드라마도 좋아요)
뜨개질의 매력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밖에서 뜨개질하기도 해요. 심지어 야구장에서도요. 당시 선물할 목도리를 뜨던 중이었는데, 다 뜨려면 한참 남았는데 친구가 야구장에 가자고 해서 뜨개질 거리를 가져갔어요. 친구 기다리면서 지하철역에 앉아서 뜨고, 경기 시작 전에도 떴어요. 경기 진행 중에도 뜨려고 했는데 너 그러다 TV 나온다는 말에 조심스레 집어넣었죠. (그 날 경기가 재밌기도 했어요 하하.) 결국 선물할 날짜 맞추느라 밤을 샜더랬죠.
생각이 많을 땐 뜨개질!
“
뜨개질을 하면서 변한 점들이 있어요.
예쁜 니팅제품을 보면 사고 싶다가 아니라 나도 뜨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낙관적 생각이 짙어진 것 같아요.
복잡한 생각을 비우고 예쁜 니팅제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뜨개질을 추천해요.
”
뜨개질을 하면서 실수할 때도 있어요. 요즘은 밍크실로 귀도리를 뜨고 있는데요, 몇 코씩 늘리고 줄었는지 적어둔 종이를 잃어버려서 몇 코씩 늘렸는지, 늘려서 몇 줄 떴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일반적인 실이면 매듭이 보여서 세면 될 텐데, 밍크 털은 매듭이 잘 안 보여서 셀 수도 없어요. 게다가 이미 한 번 종이에 안 적어두고 떴다가, 기억이 안 나서 다시 뜨는 거였거든요. 종이를 잃어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떠야할 것 같아요. 한쪽 귀만 뜨면 끝인데...! 다음에는 종이 말고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둬야겠어요 흑흑
뜨개질을 하면서 변화 점들이 있어요. 예쁜 니팅제품을 보면 사고 싶다가 아니라 나도 뜨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낙관적 생각이 짙어진 것 같아요. 복잡한 생각을 비우고 예쁜 니팅제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뜨개질을 추천해요. 뜨개질 방이 줄어 들면서 재료 구매가 까다로워지긴 했지만, 인터넷 쇼핑몰도 많고 2년 전 쯤부터 다이소에 뜨개질 용품도 많아진 덕에 3천원이면 실 두 타래와 대바늘을 구매할 수 있답니다! 저는 뜨던 귀도리를 다 뜨고 코바늘 뜨개질을 도전해 보려고요!
취미인의 Tip
귀도리, 쁘띠 목도리를 추천해요. 초보자라고 해도 반나절이면 하나를 완성할 수 있어요. 이 귀도리는 제가 다이소에서 구매한 소프트 뜨개실 한 타래와 8mm 대바늘로 만든으로 만든 거랍니다! 재료비는 2000원 정도 들었어요. 귀도리를 뜨려면 코 늘이기, 줄이기, 걸러뜨기 등 약간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어서 그런 거 싫다 하신다면 쁘띠 목도리를 추천해요. 그냥 목도리는 넓고 길어서 한참 떴어도 아직 남았다는 걸 보면 그만두고 싶어질 수도 있거든요. 코바늘을 쓰신다면 곱창머리끈이나 수세미도 비교적 쉬운 편이에요.
최대한 꽉꽉 당겨서 힘줘서 뜨는 게 좋아요. 능숙해져서 균일하게 힘을 준다면 상관없지만, 처음 몇 줄은 바늘과 붙어있어서 정말 뻑뻑한데, 거기서 뻑뻑하다고 그 후에 설렁설렁 뜨면 다 뜨고 봤을 때 그 부분만 헐거울 수도 있어요.
1) 유튜브 <바늘이야기 김대리>
뜨개질의 신이십니다. 언젠가 하나는 따라 해보겠다는 욕구가 생기게 하는 곳이에요.
2) 동대문 상가
동대문 상가에 가면 뜨개실 가게들이 모여 있어요. 아무래도 실은 인터넷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직접 실을 만져보고 울 함유량 등을 확인하고 구매하시는 걸 추천해요. 저는 주로 동대문 상가 지하1층으로 갔어요.
3) 뜨개질 공방
제가 다니던 곳은 없어졌는데, 홍대 근처에는 뜨개질 공방들이 많아요. 공방에 가면 대바늘 외에 코바늘 뜨개 등을 가르쳐 주세요.
#뜨개질 #겨울취미 #만들기 #잡념비우기
취미인 |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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